두 번째 만남

우리는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요?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시편 119,1)
  • 1. 질문
  • 살아오면서 내가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어렵거나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나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 봅시다.)
  • 2. 읽기
  • ‘4.1 왜 우리는 여기 세상에 있나요?’2)를 다 함께 읽어 봅시다.

    신앙에 관한 오래된 책에서는 “나는 왜 태어났습니까?”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또 내세에서는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볼티모어 교리서>)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알아보도록 요청받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상상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그분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요한 3,16 참조). 하느님은 또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분께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데 우리는 종처럼 하느님께 굴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님이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순명할 것을 사랑으로 선택하지요. 그렇게 하려면 하느 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 # 우리의 최종 목적
    • 우리의 최종목적은 천국에서 영원히 하느님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를 믿기 힘들지만 우리는 여기 이 세상에서 이미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7,21)
      하느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보고 함께 기도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계십니다. 죄 그리고 죄의 결과인 고통과 죽음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완전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하느님과 함께 살고 또 다른 이들을 돌본다면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 # 오직 하느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확신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 건강, 성공, 안락함 등을 바랍니다. 이러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하느님의 계명을 위반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것을 우상으로 만들어 하느님 대신 섬기고 숭배합니다.
    • # 어떻게 하면 올바로 살 수 있나요?
    • 성경은 우리 마음에 쓰여 있는 몇 가지 기본 규칙에 관해 말해 줍니다(로마 2,15 참조). 이러한 규칙들은 자연법을 이루지요. 자연법은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 산 사람들이 모두보기에 인간 본성에 맞으며 우리가 올바르게 살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양심은 어떤 행동이 자연법에 부합하고 어떤 행동이 부합하지 않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는 내면의 소리입니다(로마 9,1 참조).
      우리는 언제나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진리를 신실하게 찾아 양심이 올바른 목소리를 내도록 도와야 합니다. 때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아주 강하게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동이 선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또한 우리가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시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 @ 더 알기 - “여러분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나요?”
    •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자신이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죠! 바오로 사도는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아신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1코린 4,4) 옳고 그름의 판단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방식에 따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객관적인 진리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석탄은 노랗다고 말해도 맞고, 여러분이 석탄은 노랗다고 말해도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석탄이 검다는 객관적인 진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내 의견은 그 사실을 조금도 바꾸지 못합니다. 따라서 어느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객관적으로 잘못된 행동이 있습니다. 살인을 예를 들어봅시다. 죄가없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살인하는 행위는 언제나 잘못된 것입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라고해도 정당방위가 아닌 한 살인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지금 우리를 가능한 한 행복하게 해 줄 것이고 천국에서는 영원토록 완전히 행복하게 해 줄 것입니다.
  • ‘4.2 왜 사는 걸까요?’3)를 다 함께 읽어 봅시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아마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행복하기 위한 것이죠! 하지만 이는 말하기는 쉬워도 실제로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위한 계획을 지니고 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행복해지는 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 # 하느님은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 성경에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나는 너를 완전히 이해하고 안단다. 네가 언제 앉을지 언제 일어설지 안단다. 네 모든 생각을 알고, 네가 하는 일을 모두 다 알고 있단다.”(시편 139,1-3 참조) “나는 너를 내 모습으로 지었단다.”(창세 1,27 참조) “나는 네 어미 뱃속에서 너를 지었단다.”(시편 139,13 참조) “나는 네 인생의 여정을 알고있고, 내 길을 따르면 너는 복을 받게 될 거란다.”(시편 139,16; 야고 1,25 참조) “너는 내 아이이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 아버지란다.”(1요한 3,1-2 참조) “나는 늘 너를 사랑했고, 내 사랑은 늘 너와 함께 있을 거란다.”(이사 31,3 참조)
      때때로 어떤 사람은 “내 소명을 발견했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 재능에 맞고 자기가 받은 교육에 적합한 직업을 찾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우리 행복은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일을 잘할 때, 우리는 그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행복은 사랑과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하는 데서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데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세 번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요한 21,15-17 참조)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다음과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3) 같은 책,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했나?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2013년 8월 19일 예수회 스파다로 신부와의 인터뷰)
    • # 자신을 사랑하기
    • 하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하는지 실제로 믿기 어렵다면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혹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을 때 하느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참으로 좋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우리는 모두 답변을 찾아야 합니다. 우선 하느님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해도 좋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한 일이나 가진 것에 따라 우리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뭔가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정말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 못한 외모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녔어도, 재능과 함께 단점을 지녔어도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욱 잘 아시며, 우리가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지어 내셨으니까요!(창세 1,27 참조)
    • # 하느님과 함께할 때에만
    • 여러분은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그 말이 맞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자신을 사랑하고 난 다음 단계는 우리의 길을 찾기 위해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랍니다. 이 일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날마다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그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노력해 볼 만합니다. 우리 인생 전체를 더 좋게 변화시킬 테니까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먼저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 답은 오직 하느님과 함께할 때에만 찾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신앙에 대해 더 많이 배우며, 다른 이들을 돌볼 때, 우리는 하느님께 귀를 더욱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 @ 더 알기 - “하느님이 이미 나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면, 내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나요?”
    •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뜻에 따르며, 당신의 사랑에 자유로이 응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느님은 이미 우리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자유를 누립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 계획을 거부하고 우리 나름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신뢰하십시오. 그러고는 그 사람을 다른 이들과 나누십시오. 나머지는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 3. 나눔
  •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하느님과 함께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기 위한 삶을 살기 위해서 앞으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4. 묵상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3-4)
  • 생각거리
  • 복음 말씀 안에서의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서 ‘가난’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가난과는 다릅니다. ‘가난’은 그 어떤 현세적 재물이나 쾌락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그래서 하느님만을 필요로 하는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온갖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품고 하느님께 위로받는 그 순간이 바로 참행복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