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만남

하느님이 우리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를 따라오너라.”(마태 4,19)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십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은 인간과 유일하게 통교하십니다. 인간에게 온갖 생물을 다스리라는 특명을 주시기도 하시고(창세1,28 참조), 인간이 생물 하나하나를 부르니 그대로 그 이름이 되도록 해주셨습니다(창세2,19 참조). 이렇듯 인간은 하느님과 특별한 통교를 맺고 있고, 세상의 협조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우리가 바라는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 1. 질문
  • 나의 어렸을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 2. 읽기
  • ‘4.3 하느님이 제게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4)를 다 함께 읽어 봅시다.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습니까? ‘무엇을 해야 하지?’ 또는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은 내게 무엇을 바라실까? 하느님의 뜻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은 우리가 소명을 찾기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소명을 찾고 이행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좋은 일은 이것이 진짜로 행복하게 되는 최상의 길이자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 # 예수님은 여전히 부르시고 계신가요?
    •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라고 사람들을 초대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들은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가난한 이든 부유한 이든, 건강한 이든 아픈 이든 상관하지 않고 부르셨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당신의 제자가 되라고 요청하셨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교회에 봉사하는 다른 사명들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빠짐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마치 여러분을 사랑하시듯 말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라고 여전히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을 보거나 그분 말씀을 듣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이나 교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를 받으며, 우리 삶을 다른 신자들과 나눔으로써 우리 자신 안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듣는 일은 첫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분 곁에 있고, 그분을 따르는 데서 시작됩니다.
    • # 누구에게나 각각의 소명이 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바로 알아보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삶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압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 부르심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지만 우리의 소명은 우리 자신 안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신의 가장 깊은 갈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에게 진실하라고, 자신을 위해 정말로 올바른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내적 평화를 발견할 것입니다. 자기 마음을 따른다는 것은 피상적인 느낌에 이끌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결코 자기를 완전하게 채워줄 수 없고 자기에게 온전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자기 마음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깊숙한 갈망에 의해 인도됨을 의미합니다. 이 갈망은 하느님이 여러분 안에 심어 놓으신 것입니다. 선택은 다른 뭔가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한 가지 일을 하려고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동시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부르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뭔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상으로 만족과 성취감과 마음의 평화와 같은 많은 것을 얻을 것입니다. 포기해야 하는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른 사람에게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 # 내 소명은 무엇인가요?
    • 하느님을 섬기는 길은 많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1코린 12,4-7) 다양한 은사 가운데 두 가지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혼인 성소이며, 다른 하나는 주님을 위한 동정 생활입니다. 이 두 성소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잘 들어맞습니다. 어떠한 부르심이든 그 부르심은 근본적인 선택을 요구합니다. 곧 하느님의 뜻을 찾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그 다음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온 부르심이 혼인을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처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혼인하지 않은 채 잘지내는 것인지를 식별해야 합니다.
    • @ 더 알기 - “소명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 - 소명은 여러분 자신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부르심입니다.
      - 부르심은 어느 때든지 여러분의 삶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서서히 올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올 수도 있습니다.
      - 우리의 기본적인 소명은 주님 안에서 혼인을 하거나 아니면 주님을 위해 독신으로 지내는 것입니다.
      - 우리는 자유로이 ‘예’ 또는 ‘아니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테지만 언제나 여러분에게 큰 행복을 줄 것입니다.
      - 성급해하지 마세요. 하느님은 참된 부르심을 발견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 성경과 교회 역사는 하느님께 ‘예’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우리는 예수님과 맺은 관계가 성장할 때만 자신의 소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여정을 그분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 혼자서 모든 것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영적 지도자와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눠 보세요.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하도록 요청하십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고유한 소명이 있습니다. 그 소명을 선택할 떄 참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 ‘4.4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따를 수 있나요? 또 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요?’5)를 다 함께 읽어 봅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물으시는 첫 질문은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입니다(요한 21,15-17 참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마음으로부터 “예.”라고 하오면,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여쭐 수 있습니다.(마태 19,16 참조).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그분은 무엇이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 줄 것인지 아십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혼인하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또 혼인은 가장 분명한 선택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혼인하지 않은 채 지내면서 예수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아닌지 기도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 # 혼인하지 않으면?
    • 하느님과 그분의 교회를 섬기기 위해 혼인하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 합니다. 그 선택은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하느님이 그러한 방식으로 당신을 섬기라고 우리를 부르신다면, 우리는 그 길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설사 지금 연애 중이라 하더라도, 독신 생활이 여전히 여러분의 소명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독신으로 살도록 부르신다는 생각이 들면, 그다음 질문은 ‘어떻게?’입니다. 혼인하지 않은 상태로 하느님을 섬기는 길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중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 # 수도자, 사제 또는 부제
    • 어쩌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수도 공동체의 삶을 원하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공동체에서 사는 삶을 수도 생활이라고 부릅니다. 가톨릭에는 수도 공동체들이 무척 많아서 선택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모든 곳을 다 방문한 후에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느님이 수도 생활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면, 그분은 또한 우리가 올바른 곳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아는 공동체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느님이 그런 공동체들 가운데 하나에 입회하라고 부르신다고 느끼나요? 하느님은 사제가 되도록 부르시기도 합니다. 사제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를 중재하는 중요한 일을 합니다. 사제는 자기 백성을 하느님께 바치며, 백성을 위해 간구하고,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을, 특히 성사를 통해 백성에게 전해 줍니다. 사제는 온전히 하느님과 백성을 위해 독신으로 지냅니다. 이는 그가 단지 몇 사람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아버지가 되게 합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성품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품성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사제만이 아닙니다. 부제도 받아야 하지요. 부제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고 사도들이 선택한 일곱 남자의 후계자로(사도 6,1-6 참조), 부제들 대부분은 나중에 사제로 수품됩니다. 하지만 일생 동안 부제직을 수행하겠다는 종신 부제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종신 부제인 경우가 없지만 종신 부제는 혼인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혼인
    • 혼인은 참된 부르심입니다. 혼인을 통해 한 남자와 한 여자는 평생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헌신할 것을 서약합니다. 혼인으로 인해 우리는 자녀라는 더없이 기쁜 선물을 받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책임 있는 그리스도 신자로 키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자녀가 성장하여 또 그들의 자녀를 가질 것입니다.
    • @ 더 알기 - “직업인가? 소명인가?”
    • 직장 생활을 첫째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일이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일은 부르심과 관련된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부르심과 관련될까요?
      -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직장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인생에서 가장 관건은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 남녀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파견되는 곳에서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이 마음대로 사용하시도록 맡겨드립니다.
      - 혼인한 사람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에 이바지하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이때 그들의 직장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기회가 됩니다. 모든 사업과 직업에서 다른 이들에게 정직하고 다른 이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 모두가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거짓이나 사기, 또는 뇌물 착복과 같은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성공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의사는 안락사 처치를 하지 말아야 하며, 그리스도인인 군인은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을 거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우리의 성소는 혼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사제나 수사, 또는 수녀가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3. 나눔
  •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명은 무엇일지 서로 나누어 봅시다.
  • 4. 묵상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마태 5,5-6)
  • 생각거리
  • 우리의 인생은 수입(연봉)이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보다 ‘그 직업 안에서 복음의 가치를 어떻게 추구하며 살아내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갈망하고, 그를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며,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신앙의 참행복입니다.